[기자수첩]거침없는 KT, 통신시장 주도할까?

기자수첩입력 :2009/02/03 13:10    수정: 2009/02/03 13:35

김효정 기자

최근 국내 통신시장에서는 KT의 행보가 단연 최고의 관심사이다. 지난해 최악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KT는 올해 들어 전열을 재정비하고 통신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KT는 남중수 전 사장 구속,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정보유출로 인한 영업정지, 유선전화 수익률의 지속적 하락 등 사상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수년째 11조원대에 머무르고 있는 매출규모와 지지부진한 신사업은 KT의 발전을 의심케 했고, SK텔레콤의 약진으로 '국내최대 통신기업'의 타이틀을 반납할 상황에 몰렸다.

그러나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온갖 수난을 겪은 KT가 점차 기사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이동통신 자회사인 KTF 합병을 공식 선언하면서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KT-KTF 합병을 주도한 이석채 신임 사장은 'KT 기사회생 프로젝트'의 일등공신이다. 전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으로 해박한 산업지식과, 친정부 인사로 막강한 인맥을 자랑하는 그가 KT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석채 사장은 취임 후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사조정을 단행해 비대해진 조직구성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또한 곧바로 KT-KTF 합병을 선언하면서 융합시대에 걸 맞는 조직으로의 재구성에 돌입했다.

■KT 변신에 경쟁사들 반발, 그러나…

그렇다고 KT-KTF 합병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통신 서비스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설비(가입자망, 관로, 통신전주 등)를 공기업 시절부터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민간기업 KT'의 발목을 잡기에 충분했다.

SK텔레콤, LG통신계열사 및 케이블TV 사업자들이 합병으로 인한 불공정 환경 조성과 시장지배력 전이 등을 이유로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 서비스를 '국민 보편적 서비스'로 본다면 이러한 반대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기존 통신 사업자들은 자사의 서비스를 보편적 서비스로 해석하지 않고 잇속을 차려왔기 때문에, 이러한 논쟁을 사업자간 이권 다툼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어찌됐건 전체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KT의 합병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KT-KTF 합병을 기정 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이미 방송통신위원회에 합병 인가를 신청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인가심사에 들어갔지만 합병에 부정적 의견은 나오지 않고 있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방통위가 공정위와 협의를 통해 합병 승인을 할 수 있다며 그리고 법과 상관없이 합병 인가조건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행법상 KT-KTF 합병에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합병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다만 실제로 '인가조건'이 부여될 것인가 혹은 부여된다면 그 수준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를 가늠할 따름이다.

합병에 부정적 의견은 오로지 경쟁사들의 반발뿐이다. 아직 합병인가가 난 상황이 아니기에 이를 낙관할 수 없지만, KT는 큰 무리 없이 합병이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방통위가 밀어주나?” 일각에서 의혹 제기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KT-KTF 합병에 거센 반발을 감추지 않았던 경쟁사들의 움직임도 잠잠해 졌다. SK텔레콤과 LG텔레콤 등은 이미 충분한 의사 표시를 했으니 향후 전개과정을 지켜보겠다라는 입장이지만,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무조건 반대'를 앞세웠던 기세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시의 적절하게도 지난 2일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이석채 사장과 정만원 SK텔레콤 사장, 그리고 박종응 LG데이콤 사장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주요 통신사업자 전원이 아닌 이들 3사 사장만 모였다는 의미는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KT-KTF 합병에 가장 민감한 이슈의 핵심인 '필수설비' 문제가 직결되는 업체의 사장들이다.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SK텔레콤은 말 할 것 없고, LG데이콤은 LG파워콤 합병을 앞둔 상태에다 LG텔레콤과는 나름대로 독립적인 길을 걷고 있는 유선사업자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 탓에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회동이 방통위가 암묵적으로 KT-KTF 합병 중재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개연성을 더하고 있다.

더불어 KT가 올해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될 사업은 정부와 방통위의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IPTV, 와이브로가 대표적이다. 또한 이석채 사장이 최근 KT가 자사 주수익원인 시내전화(PSTN)의 자기잠식 효과를 우려했던 인터넷전화(VoIP) 마저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구색을 맞추고 나섰다.

■민간기업 KT에 필요한 건 뭐? ‘시장자율과 공정경쟁’

방통위 입장에서는 통합KT를 통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유무선 통합의 상징성은 물론, 앞서 언급한 신규 사업에 적극 투자하고 나설 수 있는 KT를 지원하는 것이 신규 투자를 이끌어 내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그 여파로 국내 실물경기에도 적지 않은 여파가 고민되는 상황에서 통신 투자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라며 이에 따라서 KT가 합병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청사진이 방통위에게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국가정책이나 시장상황에 부합한다는 이유만으로 특정기업에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특정 기업을 통해서 정부가 시장 개입을 해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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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가 무선통신 강국을 만들기 위해 특정 이동통신사의 합병에 특혜를 줬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소문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무선통신 강국 대열에 올라서긴 했어도, 결과적으로 주파수 독점으로 인한 잘못된 시장 구도를 형성해 '비싼 요금'이라는 소비자 피해를 가져왔다.

이번 KT-KTF 합병도 방통위가 국가정책과 경기부양 등을 이유로 과도한 개입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간기업 KT는 어디까지나 '시장자율'과 '공정경쟁'이라는 측면에서만 그 합병 여부와 인가 조건이 결정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