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누구를 위한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인가

기자수첩입력 :2009/01/21 15:19    수정: 2009/01/21 15:25

이승무 기자

최근 보건복지가족부가 추진하고 있는 청소년 보호법 전면개정안(이하 개정안)에 대해 문화예술계가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업계는 지난 1997년 한국 출판 만화 시장을 사장 위기로 몰아넣었던 ‘청소년 보호법 사태’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

이번 개정안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심의가 끝난 콘텐츠에 대해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재심’신청 할 수 있으며, 청소년 관람(구독)불가 판정을 받은 콘텐츠는 홍보의 제한을 받는다는 부분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 된다면, 청소년보호위원회 즉 복지부는 문화 콘텐츠에 대해 ‘청소년에게 위험,유해한 매체물’로 결정·고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손에 쥐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자연스럽게 복지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에는 복지부의 잣대로 등급이 매겨질 위험이 있다.

관련 분야와 크게 관계없는 관료들이 모여 있는 기관에서 심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과거 명작 어린이 애니메이션 ‘이웃의 토토로’를 어린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괴기물’이라는 YWCA의  주장에 동의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던 ‘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를 답습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또 다른 문제 조항은 청소년들의 온라인게임 이용을 밤 12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아예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셧다운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지난 2007년에도 도입을 시도한 바 있으나 문화부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의 반대로 철회됐다.

당시 문화부는 셧다운제도가 청소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는 만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이 방침은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문화후진국에서나 가능한 법에 의한 규제를 또 다시 들고 나왔다는 것은 지난 2년 동안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들이 스스로 게임을 자제할 수 있도록 하는 그 어떠한 방법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스스로의 무능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완벽한 규제란 없다. 온라인 게임을 막아버리면 그때는 콘솔 게임을 플레이할 것이다. 부모님의 주민번호를 도용하려는 청소년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규제하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인성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임을 깨달아 주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 문제 조항은 '누구든지 아동·청소년의 접근 및 이용이 허용되는 매체물을 통해 음주 및 흡연 장면을 노출시켜서는 안된다'는 부분이다.

물론 청소년들이 음주와 흡연에 노출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법은 일체의 예외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담배와 음주를 소재로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지금까지 이를 사용한 모든 문화 콘텐츠는 수거돼 19세 미만 구독불가 표기를 붙여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캐릭터인 ‘케로로’가 등장하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만화 버전을 살펴보면 가끔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흡연과 음주 장면이 나온다.

그럼 법안 통과 후 이 책의 출판사에서 취해야 할 행동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책에 19세 미만 구독불가 표기를 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 수정을 해야 한다. 케로로를 아는 외국 어린이들이 들으면 폭소를 터트릴 만큼 촌극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매우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성향으로 판단했을 때 코미디와도 같은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인기 그룹 동방신기의 노래에서 ‘넌 나를 원해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 ‘한 번의 키스와 함께 날이 선듯한 강한 이끌림’ 등의 가사가 포함됐다 해서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렸다.

또한 가수 ‘비’의 노래 ‘레이니즘’에서는 ‘은유적’으로 표현된 성적인 가사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려 수많은 청소년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바 있다.

헌법이 청소년들의 행복권 추구를 인정하는 이상,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그들을 최대한 존중할 의무가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이 점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강압적인 규제 보다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게임을 자제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더욱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육 등을 통해 보살펴 주는 것이 청소년보호위원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