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불만이 없다고 착각하는 IT조직들

최영석입력 :2008/12/08 15:52    수정: 2009/01/04 23:46

최영석

우선 불만에 대한 용어정의를 살펴보자.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은 불만(不滿)에 대한 해석은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이다. 영어에서는 컴플레인(Complaint)이라고 부른다.

불만 관련 국제 표준인 ISO 10002*의 용어정의에 따르면 컴플레인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련되거나 또는 불만 처리 프로세스 자체에 대하여 고객이 만족하지 않은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직업상 IT조직뿐만 아니라 IT를 사용하는 일반 조직(IT에서는 ‘현업’이라고 부른다.)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일반 조직을 방문했을 때 심심찮게 IT시스템 또는 IT조직에 대한 불만들을 듣는 경우가 있다.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불만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IT를 잘 모르는 사용자 입장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불만들이다.

그러나 해당 IT조직을 방문해서 IT에 대한 불만현황과 만족도 조사의 결과를 검토하다 보면, 일반조직에서 토로했던 불만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조사 결과는 IT조직내의 경영진과 직원들에게 IT가 불만 없이 만족스럽게 사용되고 있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IT조직이 불만을 접수하는 활동과 방법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IT사용자의 불만들이 정상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만에 대한 추억

10년 전쯤의 얘기지만 아직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아 경험담을 얘기해보겠다. 부모님이 멀리서 이사를 해오시면서 새로운 유선전화를 개통하게 되었다.

유선전화를 신규로 들여놓기 위해서는 대개 알려진 전화번호로 통해 신청하지만, 당시 인터넷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인터넷으로 업무처리를 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유선전화도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을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되었고, 재깍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주일, 2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해 보려고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등록된 전화연락처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다음 수순은 당연히 게시판이었다. 게시판 목록을 조회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게시판이 불만들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게시물에는 불만과 함께 글로써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욕설이 포함되어 있어 게시자 들의 불만 정도를 짐작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그 많은 불만 게시물에 가뭄에 콩 나듯이 담당자라는 사람의 댓글이 붙어있었는데 그 댓글 내용이 게시자의 순화되지 않은 게시물 내용에 대해 훈계하는 내용과 우리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변명들이어서 해당 게시자 뿐만 아니라 다른 게시자들의 불만을 더욱 가중시키는 효과를 얻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게시판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사 대표전화를 114로 찾아 전화를 했다. 인터넷 신청 사이트의 책임자를 찾기 위해 내가 건 전화는 이 담당자 저 담당자를 거쳐 여러 지점들을 순회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겪은 상황과 통화하고 싶은 담당자의 프로파일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였고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결국 인터넷 신청은 포기하고 기존에 하던 전화신청을 통해 유선전화를 개통하게 되었다.

이 경험담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발생된 불만이 적절히 접수되거나 처리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이다. 결국 나는 이 사건 이후로 이 회사의 고객중심 구호를 광고로 접할 때마다 쓴 웃음을 짓게 되었다.

사용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불만채널들

불만채널(complaint channel)은 불만이 접수되는 경로를 말한다. 전화, 팩스, 인터넷게시판 및 어플리케이션 메뉴 등이 모두 잠재적인 불만채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불만채널은 오히려 사용자들에게 혼란을 주게 된다. 불만은 시간함수이다.

불만이 발생한 시점에 즉시 제기하고 처리하지 않으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소멸의 의미는 불만이 사용자의 마음속에 쌓여서 다음 불만의 강도를 높이는 증폭 인자로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불만을 어디에 제기해야 하는 지 머뭇거리는 사이에 불만은 소멸 절차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IT조직들은 불만이 발생한 경우 즉시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불만채널을 사용자들에게 충분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국내 IT조직들이 마련해놓은 불만채널들을 살펴보면, 실제 사용자들이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불만채널이라기 보다는 잠재적인 불만 채널들(심지어는 화면 메뉴에 꼭꼭 숨어있는 경우도 있다.)을 널어놓고 사용자들에게 골라보라는 식이다. 또 IT조직에서 마련해놓았다고 주장하는 잠재적인 불만채널들도 IT조직내의 문서로만 존재하는 것이지 마땅히 이 불만채널들을 IT사용자들에게 알려줄 만한 방법 또한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만에 대한 신뢰와 독립성의 문제

사용자 불만이 IT조직에게 전달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사용자들이 불만채널을 통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불만채널을 통해 IT에 대한 불만을 제기해도 소용없다는 무용론의 소신을 가지고 있거나, 불만의 대상이 되는 IT담당자가 불만경로상에 있거나 또는 불만 내용을 공유하게 될까 봐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는 사용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무용론의 소신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의 경우는 나와 같은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전에 애써 제기한 불만들이 원하는 대로 처리되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용자들은 사용자 조직 내에서 자신의 무용론을 꾸준하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불만은 면식(面識)의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한국의 정서상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연루된 불만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예를 들어 잘 알고 있는 IT담당자와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불만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는 이때 IT조직이 마련해놓은 불만채널로 해당 불만을 접수하기를 망설인다. 해당 불만을 처리하는 부서와 그 IT담당자가 같은 조직이거나 또는 다른 조직이라 하더라도 불만의 내용이 공유할 것이라는 추측은, 제기한 불만이 IT조직 내에서 공개된 후 불만 대상자를 포함한 IT 직원 그룹의 성토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걱정을 들게 한다.

불만에 대한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상위 불만채널의 부재

사용자가 정해진 불만경로로는 도저히 불만이 해결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게 된다. 나의 경험담에서처럼 게시판으로는 불만제기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 다른 연락처를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고객 서비스 체계가 발달한 회사의 경우는 사용자의 이러한 수고를 들어주기 위해 불만채널 이외에 상위 불만채널을 미리 알려준다. 상위 불만채널은 IT가 접수된 불만의 경중을 판단하여 상위 관리자에게 보고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대안 경로이자 불만에 대한 해결 의지를 사용자에게 천명하는 방법인 것이다.

공식적인 불만경로만 열어놓게 되는 경우, IT의 중간관리자 이하 실무담당자들은 어떻게든 제기한 불만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정상적으로 불만 해결이 안 되는 경우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의 불만이 더 커지게 되거나 또는 사용자 불만이 소멸되게 되는 것이다.

국내 IT조직에서의 경우 상위 불만채널이 명시적으로 사용자들에게 알려져 있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상위 불만채널로 상위 관리자 또는 임원을 지정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이들이 불만을 직접적으로 대하는 것은 한마디로 ‘격’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사용자 불만의 선 기능을 적극 활용하라

IT조직과 사용자간에는 장애, 요청 및 문의를 둘러싼 다양한 교류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자의 불만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원하는 바를 제때 읽어내지 못한 결과로 서서히 망해가는 기업의 사례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고, 또 사용자 불만이 IT조직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사용자가 원하는 지점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방향타라는 점에서 사용자의 불만은 오히려 IT조직을 도와주는 선 기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사용자의 입장보다는 IT내부 조직의 상황에 관심을 갖는 ‘갇힌 IT조직’일수록 사용자가 몰라서 그렇다며 불만을 무시하는 경향이 크다.

사용자 불만의 선 기능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숨겨져 있거나 잠재되어 있는 사용자 불만들이 IT조직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의 문제점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용자들이 원하는 때에 불만을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는 불만채널을 마련해주고 제기된 불만은 독립적인 입장에서 완전한 종료를 보장하겠다는 신뢰를 IT사용자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또 알려진 불만채널에 만족하기 못하는 경우 언제든지 사용자가 직접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상위 불만채널도 알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상위 불만채널에는 IT 경영층도 포함시켜라. 이것은 사용자 불만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명확한 실천의지와 신뢰를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다.

IT경영층이 사용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데도 불구하고 불만이 무시될 가능성은 정상적인 조직 체계에서는 가능성 제로에 가깝다.

현대와 같은 경쟁 사회에서는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이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의 4배가 된다는 통계가 있다. IT조직과 IT사용자와의 비즈니스 관계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기존 IT 사용자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면 이들로부터 제기되는 사용자불만 또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