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표준은 무슨!”…IE8에 대처하는 어색한 풍경

일반입력 :2008/08/08 10:41

김태정 기자 기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한국 인터넷 환경은 웹 표준을 따르는 세계 추세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마음 먹고 웹 표준을 추구하려하자 국내 인터넷 업계가 '우리는 쫓아가기 힘드니 봐달라'고 나선 것이다.

내막은 이렇다.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신형 웹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8(이하 IE8)은 ‘웹 표준 지향’이라는 MS의 의지가 많이 녹아들어있다. 오픈 웹 진영과 마찬가지로 HTML 공통 표준을 적용한 것. 다른 브라우저에는 없는 파일 유포 툴 ‘액티브X’ 기능도 크게 줄였다.

이렇게되면 이전 IE 버전에 맞춰진 국내 인터넷 환경도 수술이 불가피해진다. 사용자들에게 최적의 웹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웹 표준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당수 웹사이트들이 웹 표준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서 사용자들이 IE8로 브라우저를 대거 업그레이드할 경우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예상된다. 금융권과 주요 포털 사이트 화면이 깨지거나 액티브X를 통한 파일 다운로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이같은 시나리오는 IE8 베타 버전에서 현실화됐다. 국내 주요 포털 화면이 깨져서 보였다. 특별 조치가 없다면 정식 버전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게 업계 분석이다.

한국MS 관계자는 “IE8에 대응하려면 웹 표준을 지키지 않은 웹사이트들은 ‘CSS 2.1’과 같은 최근 기술에 따라 코딩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물론 웹 표준에 맞춰 제작된 웹사이트면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 비중은 30% 수준이다. 상당수 국내 웹사이트는 IE8 환경에 맞추기 위해 전면 개편을 단행해야할 처지다. 특히 오랫동안 액티브X를 고수해온 금융권은 긴장감이 더하다.

때문에 금융감독원과 금융보안연구원은 한국MS와 접촉,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MS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협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보안연구원 성재모 팀장은 “국내 주요 사이트들이 IE8와 호환성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MS와 기술적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다음 주면 구체적인 호환성 테스트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금과 기술력이 부족한 소형 사이트들은 타격을 피하기 힘들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월 나온 윈도 비스타도 액티브X 기능을 크게 줄였는데, 그때도 금융권은 혼란에 빠졌다. 결국 정부가 이 문제를 놓고 경제정책조정회의까지 열고 MS에 시급히 협조요청을 보내는 등 촌극을 벌인 뒤에야 호환작업으로 사건을 진화했다.

그리고 1년 반 이상이 지난 지금 IE8을 놓고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비스타로 홍역을 치른 한국 인터넷은 그동안 크게 변한게 없었다는 평이다. '과거와의 결별'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웹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

때문에 MS를 붙잡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IE 조율작전을 벌이는 공공기관과 업체들의 건투(?)를 기대해야할 상황이다. 항상 '미봉책' 뿐이다.

이번 고비를 잘 넘긴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MS는 계속해서 웹 표준으로 전진하는 반면 한국 웹 사이트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이상, 유사 사건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

주요 포털 게시판에는 “앞으로도 MS는 IE 전략을 변경할 때마다 도와달라고 달려오는 한국 공공기관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는 비판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MS라는 기업에 의해 수시로 발칵 뒤집히는 한국 인터넷에 진저리를 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색 뉴스로 해외 언론에 보도되는 것도 창피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세계와 고립된 한국 인터넷'이란 자조섞인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정부와 업계 노력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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