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명의 산증인「인터넷 아카이브」

일반입력 :2006/03/14 00:03

김효정 기자 기자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발달된 브로드밴드 환경에 힘입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지만 여기서 파생된 디지털 유산의 보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정부와 민간단체 위주로 인터넷 아카이브(Archive)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다.시대가 변함에 따라 문명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 또한 변해가고 있다. 그 옛날 돌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부터, 활자와 인쇄를 통한 책자 보관을 거쳐 지금의 디지털화로 귀결되고 있다. 여기에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는 물론 기업 비즈니스, 그리고 개인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 방식이 이미 인터넷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즉, 지금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곧 문명의 발달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문명 보존을 위한 웹페이지 보존국내 인터넷이 도입된 10여 년 전부터 디지털 문명은 시작됐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과거의 문화유산 자료가 디지털화돼 있을 뿐더러, 이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문화의 한 형태로서의 가치도 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황하, 인더스 등 세계 4대 문명의 도래와는 그 성격이 다르지만 분명 보존하고 후세에 연구돼야 할 문명이다. 지금 디지털 정보를 보존해 미래의 역사학자 등 필요한 사람들이 이를 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공유하지 않는다면, 이 시기는 잊혀진 문명이 될 지도 모른다. 어찌 알겠는가? 문화유산 보존의 허술함과 전쟁 등의 이변에 의해 중국에 빼앗겨 버린 발해와 고구려 문화의 전철을 답습하게 될지. 전 세계 인터넷 웹사이트의 평균 수명은 겨우 44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수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인터넷상의 정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국내의 경우에는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해외 인터넷 아카이브 사례과거는 차치하고서라도 앞으로가 중요하다. 문명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한국뿐 아니라 세계 인터넷 아카이브의 구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민간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의 협조를 받아 ‘인터넷 아카이브’ 사이트(www.archive.org)를 구축 운영하고 있다. 1999년 브루스터 케일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 조직 ‘인터넷 아카이브’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개인사이트 제외한) 웹 아카이브 사이트로 전 세계 3500만 개의 사이트, 400억 개 이상의 페이지를 보존하고 있다. 요 몇 년간은 비디오 및 음악 그리고 텍스트까지 수집하기 시작했다. 두 달마다 전 세계 웹사이트를 스냅샷 방식으로 수집하며, 한국어를 포함해 21개 언어를 지원한다. 예를 들어, 청와대의 1998년 당시 사이트가 어땠는지,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포털의 과거 모습이 궁금하다면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이 사이트를 상업적인 가치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미네르바’, 영국 ‘세다스’, 호주 ‘판도라’ 등 각국 국가도서관 주도로 디지털 문화유산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시행돼오고 있다. 국내 ‘오아시스’ 프로젝트로 물꼬 터최근 국내에서도 의미 있는 인터넷 콘텐츠와 정보, 인터넷 사이트를 보관하고 복원하려는 인터넷 아카이브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터넷 아카이브는 주요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보관하는 것과 인터넷 사이트 자체를 보관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단순한 콘텐츠 아카이브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콘텐츠 아카이브는 국립도서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한국영상자료원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문화원형 구축사업’을 통해 기존 아날로그 문화유산 정보를 디지털로 아카이브하고 있으며,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한국영화의 방대한 정보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www.kmdb.or.kr)를 운영중이다. 특히, 국립중앙도서관의 온라인 디지털 자원 구축 프로젝트 ‘오아시스’(OASIS, Online Archiving & Searching Internet Source)는 국가의 문화적 유산과 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승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정보 자원에 대한 보존 정책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행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포괄적인 인터넷 문화를 논하기에는 너무나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실제 수집 대상 자료는 교육, 연보, 신문 등 오프라인 개념의 자료이며, 블로그나 토론 리스트, 게시판, 포털 사이트 등 그 시대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사이트를 수집 제외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오아시스가 수집하는 디지털 자원의 범위 또한 ▲ 한국에 관한 것 ▲ 한국 도메인(~.kr) 상에 있는 것 ▲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과학적으로 중요하며 한국 저자에 의해 쓰여진 것 ▲ 권위 있는 한국 저자가 쓴 것 ▲ 국내외적으로 해당 분야에 기여한 것 ▲ 해외 자원일 경우, 한국 사람에 의해 쓰여지거나 한국을 주제로 다룬 것 등으로 제한된다. ‘정보트러스트’ 문화적 요소 강조한 민간 프로젝트 이처럼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생활 문화적 개념이 빠져 있다. 시대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인터넷 아카이브’처럼 가능한 많은 웹에서의 행위들이 수집돼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국내 민간 부분에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인터넷 사이트의 아카이브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정보트러스트센터(www.infortrust.org)로 문화연대, 진보네트워크, 다음세대재단, 함께하는시민행동, 사이버문화연구소 등이 국내 인터넷 문화유산의 보존과 복원을 위해 구성됐다.여기서는 지난 2005년 5월, 1994년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인터넷 웹진 ‘스키조(schizo.webarchive.or.kr)’를 복원하며 본격적인 인터넷 아카이브 활동을 시작했다. 정보트러스트센터 사무국을 담당하고 있는 다음세대재단의 이지연 실장은 “사용자들이 자주 들르던 사이트나 커뮤니케이션이 갑자기 문을 닫는다면 개인이 아닌 한 가상 집단에 의해 공유됐던 정보와 지식이 한 순간 유실된다”며 “스키조는 마치 국내 최초 잡지 ‘소년’과도 같이 10~20년 후에 우리 인터넷 문화를 가늠해 주는 중요한 문화자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인식 확산 위해 노력중스키조 복원을 필두로 인터넷 아카이브를 위한 캠페인도 진행중이다. 그 중 하나는 ‘e하루616’(eHaru616) 캠페인으로 매년 6월 16일에 캠페인 참가자들이 인터넷과 관련된 개인 일과를 기록하여 올리는 것으로, ‘원 웹데이즈(One Web Days)’라는 비슷한 성격의 해외 캠페인과도 연계해 나갈 계획이다.예를 들어, 일반 인터넷 사용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니홈피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메신저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는 등의 지극히 사적인 문화적 행위를 매년 보여줌으로써 인터넷 문화와 환경 변화의 역사적인 흐름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31개의 ‘우리가 보존해야 할 인터넷 문화유산’ 사이트를 선정해서 아카이빙 시스템을 구축해 영구 보관하는 프로젝트도 진행중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와는 달리 민간 전문가 및 네티즌이 직접 참여해 블로그, 커뮤니티, 토론 게시판 등이 포함된 문화·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이트를 선정했다. 대표적인 인터넷 문화 유산으로는 기술 분야에는 최초의 유즈넷이자 국내 IT 기술 창구 역할을 했던 ‘한국과학기술원 유즈넷(newa.kaist.ac.kr)’이, 인터넷 문화 분야에는 ‘위키백과(ko.wikipedia.org)’, 정치사회 분야에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prkorea.com)’ 등이 선정됐다. 또한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서포터 붉은악마의 전신인 ‘하이텔 축구동호회’는 사라진 유산상을 받기도 했고, 동성애를 음란물로 규정한 청소년 보호법 조항에서 동성애 부분을 삭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동성애 사이트 ‘엑스존’이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세대 간 문화 정체성 연결 수단인터넷 문화 유산으로 선정된 사이트에 대한 객관성과 가치를 누구나 전적으로 수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웹 사이트를 아카이브하는 것에는 물질적인 한계가 있으며,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방대하다. 실제 31개 사이트만 선정한 이유도 아카이빙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포털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 또한 내부적으로 아카이브를 하고는 있지만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발생하는 저장장치와 운영비에 부담을 갖고 있으며, 상업적 가치가 떨어져 우선 순위에서도 뒤로 밀려 있다. 일부 특별관리대상 정보를 제외하고는 대략 3개월 단위로 데이터를 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문화적 가치가 있는 웹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인터넷 아카이브 사업은 국가 주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어 웹사이트도 인류문화 유산의 일부가 된 만큼 사회적인 책임도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화유산 보존과 복원은 오늘이 아닌 내일을 준비하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 세대와 다음 세대의 문화 정체성을 연결시켜주는 수단이 디지털로 바뀐 것뿐이다. 지적 유산을 보존하고 한국인의 생활상을 대변해 주는 인터넷 문화유산 아카이브에 애정 어린 관심을 쏟아주길 바란다. @